장례식 직접 치러보니, 알게 되는게 좀 있네요
20일 토요일 사망 21일 입관 22일 발인
아버지 돌아가시고 상주 직접 겪어보니 느끼게 된 두 가지입니다
1. 조문객이 와서 아무것도 안하고 가만히만 있어줘도 너무 고맙기만 함.
몇시간씩 있어주면 진짜 고마움.
2. 무슨 옷 입고 오느냐는 전혀 눈에 안들어옴 그냥 감사하기만 함.
무조건 같이 있어주는게 큰 위로가 되더군요
이번에 확실히 알았네요
위 장례식 관련 이야기를 정리하면 아래와 같습니다.
첫 번째 깨달음: 함께 있어주는 것의 가치
2024년 7월 20일, 토요일. 아버지께서 세상을 떠나셨습니다. 슬픔 속에서 장례식을 준비하며 많은 분들이 조문을 오셨습니다. 그 중 일부는 멀리서 오셔서 몇 시간씩 저와 함께 있어주셨습니다.
그들이 특별히 무언가를 하지 않았어도, 그냥 그 자리에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큰 위로가 되었습니다.
조문객들이 가만히 제 곁에 앉아 주시기만 해도, 그들의 존재는 제 마음을 따뜻하게 했습니다. 아무 말 없이 그저 함께 있어주는 것, 그것이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이번에 확실히 알게 되었습니다. 그 순간들은 저에게 큰 위안과 용기를 주었고, 그들 한 사람 한 사람이 얼마나 고마웠는지 모릅니다.
두 번째 깨달음: 복장이나 외적인 것은 중요하지 않다
장례식에서 사람들이 어떤 옷을 입고 오는지는 전혀 중요하지 않았습니다. 격식을 차린 정장이나 간단한 평상복, 그것이 무엇이든 상관없었습니다. 중요한 것은 그들이 제 곁에 있어주었다는 사실이었습니다.
조문객들이 무엇을 입고 왔는지보다는 그들의 따뜻한 마음과 진심이 더 크게 다가왔습니다. 그들의 존재 자체가 감사했고, 그들이 제 곁에 있어준 것만으로도 충분했습니다. 이번 경험을 통해, 외적인 것들은 결국 부차적인 것임을 다시금 깨달았습니다.
함께 있는 것의 힘
이번 장례식을 통해 가장 큰 위로는 바로 '함께 있어주는 것'이었습니다. 사람들은 종종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망설이기도 하지만, 사실 그저 곁에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큰 힘이 됩니다. 조문객들이 몇 시간씩 제 곁을 지켜준 것, 그리고 그들이 무언가 특별한 말을 하지 않아도 함께 있어주었다는 것, 그것이 진정한 위로였습니다.
장례식은 슬픔과 고통의 시간이지만, 동시에 사랑과 위로를 느낄 수 있는 시간이기도 합니다. 아버지의 장례식을 통해 깨달은 이 두 가지는 제 마음에 깊이 새겨졌습니다. 앞으로 살아가며, 저도 누군가에게 같은 위로를 줄 수 있기를 바랍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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각 종교의 기원(기독교, 이슬람교, 카톨릭교, 불교, 힌두교, 유대교)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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